부활의 주님은 내게 "평안하뇨" 라고 물으셨다

2012.07.01 13:40

안현애 조회 수:1437

부활의 주님은 내게 "평안하뇨" 라고 물으셨다.

 

여호수아서 2장을 묵상하다가 여리고성에 사는 기생 라합을 알게되었습니다.

특별히 알게되었다는표현을 쓰고싶은 이유는 라합에 대하여

그동안 설교를 통해 또는 주일 학교 교육을 통해 여러번 듣고 배워왔지만

오늘 말씀 묵상 속에서 만난 라합은

은근히 나태하고 게으른 자신을 돌아보고 믿음을 결단하는 아름다운 기회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40여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이제 요단 건너 저편, 꿈에 그리던 가나안을 눈앞에 둔 여호수아는

예전에 모세가 여호수아와 갈렙등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던 것처럼

2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가까이 왔기에

여리고성에도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말입니다.

 

애급에게 행하신 엄청난 10가지 재앙,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신일,

만나와 메추라기, 불기둥과 구름기둥 그리고 얼마전 요단 저편에 아모리 사람에게 행한일 등등..

그 모든 소문이 전해져, 라합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 하신일에 여리고 사람들은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다 (11)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목표가 가나안 땅 이라는 것을 아는 여리고성 사람들은

폭풍전야를 맞아 최후의 일전을 각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리고성에 숨어든 2명의 정탐꾼은 금방 눈에 띄었고 .....긴박한 상황에서 기생라합은

이스라엘이 이곳에 입성할 때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구해 줄것을 약속받고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 도망시킵니다. 그 결과 라합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구합니다.

라합은 자신이 만나지도 보지도 못한 하나님이지만

소문 만으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에 그분의 승리를 확신했기에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며 그 분 편에 서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1절은 이 라합의 행위를 믿음이라고 단언합니다.

이 믿음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구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난 부활절 묵상했던 마태복음 28,

예수님의 부활의 장면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 가시고 장사 후 사흘이 되는 새벽

막달라마리아와 다른마리아 등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무덤을 찾았다가

빈 무덤을 보고 천사로 부터 부활의 소식을 듣게됩니다.

마가복음과 누가, 요한 복음에도 이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 간 이유를

시신에 향품을 바르러 무덤을 찾았다는 등등

부활의 소식을 듣게되는 모습을 비슷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동안 예수님의 제자들과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동안 그들의 삶은

물론 허기지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까지 그들은 나름대로 특권의식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가시는곳 마다 기적을 일으키시고 병을 고치시고 권세있는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주님을 따르며 만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기를 원하던 혈루병여인, 예수를 보기위해 나무에 오른 삭개오,

예수께 중풍병자를 보이고싶어 지붕을 뜯은 사람들등....

아마도 당시 군중들 앞에서 최고의 스타이신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제자의 위치는

선택된 자로서의 자부심이 있지 않았을 까요.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과 지내는 3년동안 예수님과 동거 동락 했음에도 예수님을 알지못했습니다.

그가 베푸는 기적에 감동하고 흥분했을 뿐 그분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생각을 읽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권력을 가지면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까하는 헛된 논의에만 열중할 뿐

그분의 삶과 죽음의 목적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때떄로 나는 고난을 당하고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믿고 기다린 제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자 제자들은 풀없이 흩어졌고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도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위해...자신의 허전한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기위해 간 것입니다.

 

그러기에 빈 무덤을 보고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6)라는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말씀의 성취에 대한 감사의 기도보다는

무서움과 기쁨으로 제자들을 향해 달음질 (8)합니다.

그때 달려가는 여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평안하뇨"라고 물으십니다.

"무서워말라"고 위로하십니다.

그들의 마음 속엔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도

무언가 꺼림직한 두려움이, 무서움과 기쁨과 흥분과 놀라움의 감정이 교차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오랜 날들,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보았던 놀라운 기적들,

그분의 능력, 보여지는 은혜만 보고 놀라고 감사했을 뿐 ,,,,

그분이 그토록 알려주고 싶어하시던 참 진리는 건성으로 넘겼다는 자괴감이 있었겠지요.

 

그분을 사랑했지만 ...가끔은 내 서러움에... 때로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단 한분, 그 분에 대한 고마움에

예수님을 불렀을 뿐,

주님이 우리에게 진심으로 하시고자 하는 그 말씀은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씀은 무심히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문만으로도 하나님의 권능에 마음이 녹아져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살리고, 생명을 얻은 믿음의 사람 라합을 보며

나는

매일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한 없는 은혜 속에 살면서도

믿어지는 것만 믿으며 살아가는 보잘 것 없는 이 믿음을 회개합니다.

날마다 작아지고 허물어져서 너무 부끄러운 이 약한 믿음을 회개합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 보고 믿는 믿음보다 복되다고 하셨지만

보고도 믿지못하는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부황의 주님은 오늘,

부질없는 낭패감에 허덕이는 내게도 "평안하뇨"라고 물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