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다스리라

2018.10.28 12:33

chihyun 조회 수:130

분노를 다스리라

 

지금 고속도로 추월선을 달리고 있다고 가정하자, 어떤 남자가 내 차 뒤로 바짝 붙더니 자기가 추월할 수 있도록 길을 비켜 달라며 불을 깜박인다. 나도 제한 속도를 이미 10킬로미터나 초과해서 달리고 있는데 그 남자는 더 빨리 가고 싶어 한다. 길을 비켜주려면 속도가 느린 주행선으로 비켜나야 한다. 물론 그것은 허락할 수 없는 일이다. 투사의 본능에 불이 당겨진다. 그래서 그 사람을 무시한 채 몇 킬로미터를 더 버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승자가 양보하는 심정으로 길을 비켜준다.

그러나 상대가 나를 추월하는 그 순간, 그는 내 쪽을 쏘아보며 욕을 내 뱉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속도를 잔뜩 올려 앞으로 쌩 내지르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 의미를 안 나는 잔뜩 열을 받는다. 이때부터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의 속도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글은 고든 맥도날드 목사의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하는 책에서 따왔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남자는 작은 것에 승부를 걸고 분노하며 살아간다. 아니 모든 인간이 어느 정도 그런 면을 갖고 있지 않을까? 카인이 동생 아벨에게 느꼈던 질투, 요셉의 형들이 동생에게 느꼈던 분노, 사울 임금이 골리앗에게 승전한 다윗의 손을 잡아 주려는 순간, 백성들에게 들려오는 <다윗의 찬가>는 사울의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질투의 본능에 불을 질러 분노로 나타났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자기를 다스린다는 것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를 다스렸다. 압살롬에게 궁을 내주고 쫓겨 가는 길에 사울의 친족이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했다. 꼴좋다’, ’네 한 일 그대로 아들에게 당했다.’, ‘너의 삶은 이제부터 지옥이다 하는 투의 시므이의 저주 앞에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저주하게 하신 것을 내가 어쩌랴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는 분노를 이긴 사람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