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시골 처녀의 사랑

2019.06.16 12:55

chihyun 조회 수:46

왕과 시골 처녀의 사랑

아가 1:1-6

 

아가는 사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노래 중의 노래라고도 하며 솔로몬의 노래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사랑의 노래는 남녀 간의 세속적인 사랑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거룩한 비유를 위한 노래라고 인정되어 왔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결합(2:2;16;1:3) 또 그리스도와 성도 간의 사랑의 신비를 종종 가르치고 있습니다.(5:25,31-32)

 

왕과 시골처녀가 사랑을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일반적이지 않기에 매우 극적입니다. 왕은 양반가()의 잘 교육받은 여인과 결혼하는 법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외적인 일이 흔치 않게 일어나곤 하지만, 고대사회는 이러한 일이 매우 희소했기에 놀라운 사건입니다. 더욱이 왕이 사랑한 여인은 평범하다 못해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녀의 약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그녀는 예루살렘의 처녀가 아니고 지방, 그것도 예루살렘 사람들에겐 알기도 어려운 시골출신입니다. 술람미는 술람지역의 여인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술람은 성경의 수넴(19:18; 왕상1:3; 왕하4:8)지역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수넴은 잇사갈 지파의 땅으로 갈릴리 옆 지역의 비천한 땅입니다.

둘째, 그녀는 얼굴색이 검었습니다. 이 역시 예루살렘의 정숙하고 교양 있는 처녀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그녀의 삶은 얼굴을 가꿀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고, 오히려 햇빛아래에서 일하느라 피부가 새카맣게 타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니 일반소녀의 꿈처럼 아름다운 외모는 꿈꿀 수도 없었습니다.

셋째, 그녀는 한낮에도 포도원에서 일해야 하는 가난한 집안출신입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건을 쓰고 쟁기와 낫을 들고 포도원을 가꾸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쉬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오빠들도 그녀를 막 부려먹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니(6) 홀어머니 밑에서 가사를 책임지며 살았던 소녀라 보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왕은 이 소녀의 출신을 알고도, 검게 그을린 외모를 보고도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2:2)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눈에 콩깍지가 씌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사랑이 있게 되었는지, 우리는 두 가지 요인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소녀는 당당했다는 것입니다. 소녀는 예루살렘의 소녀들을 향해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솔로몬의 휘장같구나”(1:5)라고, 기가 죽기는커녕 당당히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냅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당당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둘째, 왕은 지혜로운 눈을 가졌습니다. 보통사람들처럼 일반적인 눈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 특별히 사람의 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으니 참으로 지혜로운 왕입니다. 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귀에 들려오는 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하는데(11:3), 여기의 주인공이 그런 왕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소녀들은 왕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경쟁자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술람미 소녀를 얼굴도 새까맣다, 촌스럽다, 집안도 별 볼 일 없다 하고 수많은 흉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말들이 유언비어라 할 수 없는 것이 사실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왕도 그런 소리를 들었고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그의 가슴엔 사랑이 불타올랐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반전과도 같은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꿈꾸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이 보여준 사랑이 이런 사랑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죄성(罪性)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마치 왕후를 맞아들임과 같이 사랑하셨습니다.(16:13) 하나님은 존귀한 왕이요 우리는 시골 처녀에 불과한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못나고 흠투성이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왕의 구애를 받았습니다. 구약의 호세아선지자를 주목해보십시오. 호세아는 창기가 된 여인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3:1) 가난한 호세아는 여인이 진 빚을 치루기 위해 거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재물을 내놓았습니다.(3:2) 선지자와 창녀의 결혼, 구약의 율법에 비추어도, 사회관습에 비추어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치 이와 같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하늘의 왕이셨습니다. 그분이 인간을 사랑했다는 것도 대단한 사건인데 그 분의 사랑의 대상은 인간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비천한 병자, 가난한 자, 귀신들린 자, 이름 없는 민초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늘의 왕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의 목록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리석은 자, 능력이 없는 자, 문벌이 없는 자,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 없는 자”(고전1:26-28). 그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9)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과 배경으로 구주 예수 우리 왕의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일방적인 구애입니다. 우리는 그 뜨거운 사랑, 홍수로도 끌 수 없는 사랑(8:7)의 손을 잡았을 뿐입니다.

 

3. 우리는 이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야 되지 않을까요? 복음은 하나님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들어야 할 이야기는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내와 같이(62:5;2:19)), 그리고 자녀와 같이(1:12)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말입니까? 자격이 있는 신부이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흠결 많은 신부인데도 사랑하셨다는 것이, 그 사랑을 말로가 아니라 온전한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루고 보여주셨다는 것에 감격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도 이러한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되지 않을까요? 술람미 소녀는 이 사랑 때문에 병이 났다고 했습니다.(2:5) 신랑을 연모하다 얻는 사랑의 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병은 임의 품안에서 치유됩니다.(2:6) 우리도 사랑의 병을 앓아가며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세상 풍파에 식었기에 그때 그 사랑, 곧 첫 사랑의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2:5) 그리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