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2019.03.24 12:20

chihyun 조회 수:91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편 42:1-5)

 

1.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하는 사람입니다.(14:1) 그러나 신앙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고히 붙드는 사람들입니다.(11:6)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악한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욕심을 이루기 위해 악행도 서슴치 않으며(14:3), 마땅한 인간의 도리를 행하지 않습니다.(1:28-31) 반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 마땅한 인간의 도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삽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기에 인간의 지혜 너머에 계십니다. 그러기에 철학과 과학으론 증명 불가능하여 하나님 신앙은 많은 무신론자들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인간의 한계를 전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미가 코끼리를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작은 인간은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머리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서양사에서 천년에 한 번 나올까 하는 지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신은 무한하다. 유한한 것은 결코 무한한 것을 밝혀낼 수 없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카를힐티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신의 본질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은 신이 아니며 신을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봅니다.(11:1-3) 생텍쥐베리가 쓴 <어린왕자>의 한 구절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람이 어떤 것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건 오직 마음으로 볼 때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믿음, 영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본질도 내면에 있기에 그것을 보기 위해서도 심미안이 필요한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존재를 부정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런 연고로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고전1:21) 당신을 드러내시며, 그렇게 하여 믿음의 사람들을 만들어 가십니다.(8:6,12,4

2; 10:44)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 사이의 대조적인 삶을 통해 오늘도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2.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삶에는 낙심과 불안이 필연적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인간은 불행의 연속이기에 사람들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불안을 약이나, 돈이나 권력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과 도박으로, 식탐과 마약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잠깐의 도피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큰 문제를 야기 시킵니다.

 

오늘 성경은, 신앙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도우실 것이며, 그 결과 그 입술에 기쁨의 찬송이 끊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5) 이 권면은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에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후손들에게 신앙을 가르칠 때 출애굽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학대를 받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셔서 애굽의 황제를 굴복시키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네게 하시고, 여리고 성을 함성 하나로 무너뜨리며, 가나안 족속들을 초개와 같이 섬멸했던 그 사건, 그리고 그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기적적인 관여를 가르쳤고, 그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오늘도 여전하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고개를 들고, 그 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121:1)

 

3. 하나님은 멀리가 아니라 가까이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선 역경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곧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으나 응답이 없고, 주위 사람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단 말이냐?”(3) 하고 조롱을 하는 상황에 있으나,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마치 먼 길을 간 지인처럼 다시 돌아오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에, 오늘 참는다는 것이 괴로운 일이요, 그러니 마음이 더욱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돌아오시기에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또한 멀리 계시기에 우리의 형편을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 잠시 하나님이 잠잠하고 계실 뿐입니다.(50:21) 곧 일어나실 것이며(44:26) 달려오실 것입니다.(6:49)

제자들이 바다에서 거센 물결로 인해 고난을 받을 때, 예수님은 산 위에 계셨습니다. 시간은 밤 사경이니 새벽 1-3시경입니다. 거리도 멀고 시간은 캄캄한 밤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14:22-33) 거리도 문제가 아니고 캄캄한 시간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캄캄한 중에도 보고 계셨고 먼 거리임에도 단숨에 오셨으며, 더욱이 바다를 육지같이 걸어서 오셨습니다. 인간의 거리감각으론 멀다하여도 주님에게는 한 걸음 거리일 뿐이며, 인간의 감각으론 한 밤중일지라도 주님의 눈을 가리지 못하며(139:12), 바다도 주님의 걸음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손을 내미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믿고 주님을 소망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