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2019.02.10 13:40

chihyun 조회 수:69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느헤미야 2:1-10)

 

느헤미야는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의 후손으로 바사왕국의 아닥사스다 1세 때 고위직인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름 뜻은 여호와의 위로인데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통해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느헤미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고후1:3-4)

 

1. 이스라엘 백성은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 100년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민족으로 구성된 지배세력에 의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는 고향 땅에서 온 사신들을 통해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향에서 온 사신들은 이 답답하고 억울한 소식을 전하며 느헤미야의 힘으로 이 문제를 풀고 자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왕을 움직이고 그래서 강력한 힘으로 이민족의 압제를 누르고 다시 예루살렘 성의 부흥을 기약하고자 찾아 온 것입니다.

 

2. 느헤미야는 비통한 고향 소식을 듣고 바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느헤미야는 문제를 만나 자신의 힘을 저울질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지혜를 짜내어 왕에게 또는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대신들에게 달려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금식하며 기도하며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1:4) 그러기를 4개월이었습니다.(기슬르월에서 니산월까지;1:1,2:1참조) 그야말로 인내의 시간이요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조상들의 신앙전통에 따라(55:17;6:10)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이 문제를 내어놓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의 처음 내용을 보니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회개의 기도를 제일 먼저 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1:6) 그는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첫 걸음임을 알았습니다.(1:15; 2:38)

 

3. 어느 날 왕이 느헤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문제의 실마리가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페르시야 왕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해결자입니다.

 

그러나 왕에겐 이스라엘 백성의 일이란 아침에 무슨 빵을 먹을 것인가 하는 고민보다도 하찮은 문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왕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해 주는 것은 기대하기 난망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이 묻는 것입니다. 먼저 관심을 표명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야 너에게 무슨 일이 있기에 그리 얼굴색이 안 좋은 것이냐”(2:2a) 느헤미야는 두려울 정도로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2:2b)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가 직무에 방해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 왕은 관원의 형편을 살피려고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기생각, 자기 일에 몰두해 있는 것이 제왕의 모습입니다. 술잔을 가지고 왔지만 그냥 놓고 나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혹 왕이 술잔을 가까이 가져오라 하여도 말없이 술잔 만 건네주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감히 느헤미야가 왕에게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기회를 얻어 말한다할지라도 그런 변방의 부족의 문제는 왕의 심기만 불편하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온통 왕의 마음이 느헤미야의 얼굴 표정과 그의 마음에 쏠렸습니다. 심지어 왕은 자비로운 말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2:4a)하고 먼저 묻는 것입니다. 과연 느헤미야의 기도대로(1:11) 왕의 마음을 하나님이 만져주셨습니다.(21:1) 얼마나 쉽게 일이 풀렸습니까? 왕의 말을 듣고도 느헤미야는 바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 기도했습니다.(2:4b)

 

4. 문제를 만나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꼭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에겐 죽고 사는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목에 놓인 칼보다 자신의 손톱 아래 가시가 더 심각하고 중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여겨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7:1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이며(14: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요 아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문제를 페르시아 왕을 통해 해결하셨습니다.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은 느헤미야가 아니고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신들은 느헤미야라 생각했겠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분이라 믿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왕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유다 땅으로 보내... 그 성읍을 건축하게 하옵소서”(2:5) 왕은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왕이 느헤미야를 좋게 여기게 되었으니 느헤미야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명령을 내려 느헤미야의 모든 요구를 기쁘게 들어주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