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먹이시는 방법

2018.11.25 13:01

chihyun 조회 수:42

하나님이 먹이시는 방법

(열왕기상 17:1-16)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단테는 <신곡> 지옥 편 33장에서 굶주림의 고통이 자식을 잃는 고통보다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대 기근을 만나면 자식들도 삶아 먹었다는 기록들이 일반역사뿐 아니라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왕하6:28-29) 이처럼 굶주림은 인간의 육신뿐만 비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은 인간의 품위를 지키고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소원입니다.(30:8)

예수님은 늘 가난한 자들을 만나셨고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15:32) 때론 오병이어의 기적(14:13-21)을 통해 배고픔을 친히 해결해주시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먹고 사는 일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6:31-32) 부자가 아닌 평생 가난하게 사셨던 분이기에(25:35-36) 그 분의 말씀이 오늘 양식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굶주려 죽게 된 엘리야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쫓겨 도망치게 되었는데 그야 말로 온 천하가 기근이 들어 어느 곳을 가도 음식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먹고 기력을 찾았다는 것이고 그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는 일에 책임지신다고 진술할 수 있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책임을 지시고 어떻게 우리를 먹이실까요?

 

1.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보장하십니다.

일반적으론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음식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수고로 먹는 것 역시 하나님이 먹이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양식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손을 놀려 수고한다면 먹고 입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교훈일 것입니다.(10:4;13:4,23) 여기서 경계가 되는 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23:4) 욕심이 지나치면 거짓말해서 먹고(삼하16:4), 속여서(11:1), 도둑질해서(9:17), 강도짓을 해서 먹으려고 합니다(왕상21:16) 이러한 것은 악인의 소득’(10:16), 악인의 형통’(24:1)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37:35-36)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제어하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굶주리는 법이 없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손으로 수고하는 것에 대해 확고하게 보장하시기 때문입니다.(34:10;37:25;128:2)아멘.

 

2. 하나님이 직접 먹이십니다.

오늘 엘리야는 나라로부터 쫓기는 상황입니다. 선지자 노릇도 수고하는 일인데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아합 임금의 눈을 피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 숨었습니다.

일반 성읍, 사람 많은 곳엔 위험하므로 하나님은 그를 요단강 앞 그릿 시냇가 숲에 머물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곳에 있으니 양식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동굴에 숨어 오바댜에게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다른 의인들과 같은 처지도 아닙니다.(왕상18:4) 그러니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완전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우리도 종종 이런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엘리야를 먹이시는 방법을 보십시오.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옛날 광야의 길을 걸어가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늘에서 친히 내려주는 만나를 먹고 고기를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어찌 보면 애굽에서 강제노동하면서 받았던 양식보다 메마른 광야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하늘에서 양식이 비같이 내렸고(16:4), 고기 냄새에 질리도록 주셨습니다.(11:20) 하나님이 직접 내리신다는 것이지요. 인간이 노력해서 거두지 않았다는 면에서 만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신령한 음식입니다. 까마귀로부터 온 음식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왔습니다. 조금 확대해 살펴보면, 사람을 통하기는 했지만 까마귀 방식이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은 경우입니다.(10:33

-34) 강도 만난 사람은 누가 자신을 도왔는지 몰랐습니다. 깨어보니 살아있었고 도움을 받았는데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이 전연 관계없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이런 도움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3. 사람을 통해서 먹이십니다.

하나님은 가뭄으로 그릿 시냇가 물도 마르게 되자 엘리야에게 시돈지역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한적한 시골로 왕의 관심밖에 있는 지역이요 관리들도 그만저만한 외딴 곳입니다. 그런데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17:9)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가서 만나보니 아무 것도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가진 것은 오직 자신과 아들 두 사람의 마지막 식사정도나 만들 수 있는 소량의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빌립보성에서 루디아라는 능력 있는 여인에게 대접을 받게 하셨는데(16:14-15) 왜 엘리야에게는 오히려 보태 주어야 하는 과부의 대접을 받게 하셨는지 참 아이러니 할뿐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예상외로 진행됩니다. 첫째로는 그녀가 마지막 음식인 그것을 자기 아들에게 먹이지 않고 나그네에게 주었다는 것이고 둘째론 그 이후로 그녀의 집에는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믿기 어려운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7:14) 그녀는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하였습니다. 말씀을 전한 엘리야나 그 말씀을 따른 사렙다 과부나 우리와는 달리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생활비 전부가 되는 동전 한 잎을 하나님의 성전에 드린 과부처럼(12:44) 가난한 소년의 점심처럼(6:9) 가난한 자의 구제와 베품이 만들어내는 기적입니다.

어쨌든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먹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