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

2018.10.14 13:13

chihyun 조회 수:94

인간의 욕망

(사무엘하 12:1-9)

 

오늘의 장면은 성군 다윗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믿음의 모범적 인물로 소개되고 하나님께 마음에 합한 자”(13:22)라고 칭찬까지 받았던 다윗이지만 욕망 앞에서 크게 넘어졌습니다. 밧세바의 미모에 유혹을 받아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다윗은 왕의 위력을 행사하여 밧세바를 취함으로써 평화로운 한 가정을 부서뜨렸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고 충성스런 장군 우리아를 함정에 빠뜨려 죽게 했습니다. 모두가 모르거나 일부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선지자 나단은 다윗의 죄악을 추궁하고 책망했습니다. 나단은 멋진 비유를 사용하여 다윗을 책망하고 시인을 받아냈습니다.

비유의 내용인즉 양과 소가 셀 수 없이 많은 부자가 손님을 접대하고자 양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것이 자기 우리에 있는 양이 아니라 양 한 마리가 전 재산이요 희망이어서 그 양을 애지중지하며 살아가는 한 가난한 목동의 양을 강제로 빼앗아 손님을 대접한 것입니다.

부자의 행위는 다윗을, 억울하게 양을 빼앗긴 자는 밧세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양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비유의 말을 듣고 크게 분개하였지만 그 악한 자가 자기인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1. 인간의 욕망은 통제되어야 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재물욕, 권력욕, 식욕, 명예욕, 색욕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같은 욕망은 육체를 가진 인간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며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성으로 조절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 욕심이 과해질 때 탈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욕망을 통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4:7) 먼저 욕망의 정체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욕망은 3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가진 다윗도 넘어진 것입니다. 부자가 수백 마리의 양 중에 한 마리를 아끼려고 힘없는 자에게 강도 짓을 하는 것을 보면 더 가진 자가 욕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입을 크게 벌려 채우라 하셨지만(81:10) 그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한계를 정하셨으니(8:29) 한계와 분수를 아는 것이 겸손이요(벧전5:6) 큰 지혜입니다.

둘째, 욕망은 내 힘을 넘어섭니다. 곧 내 힘으로는 다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이러한 욕망을 통제 조절하기 위해 도덕, 윤리, 철학,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것들은 인간의 욕망을 조절하는 우수한 장치이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다윗의 실패, 바울의 절규(7:24) 등을 통해 배우듯이 욕망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결국 죄를 낳고 마는 것입니다.(1:15)

셋째, 욕망은 결국 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파괴합니다.

사탄은 천하영광을 얻으려면 자신을 섬기라고 유혹합니다.(4:9) 카인은 동생을 죽였으나 더 많은 소유를 가진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가득한 생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제거했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했습니다.

 

2. 욕망은 신앙으로 통제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욕망과 관련하여 3가지 관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먼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8) 하셨습니다. 곧 다윗의 권력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다윗이 가진 힘은 개인적 욕망을 채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위임해주신 것입니다. 양치는 목동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주신 이가 하나님이셨습니다.(78:70-71)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지혜와 배경은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갖고 태어난 것도, 습득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내 욕심을 채우는데 쓰면 삼손처럼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16:19) 우리는 하나님의 종인 것을 잊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자기의 분수를 알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지만 할 일과 못할 일을 구분해야 했습니다. 주인이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분수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다윗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만드신 그릇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귀한 그릇으로 사용되었지만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갈 때도 하나님께 물었던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삼하5:19)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전쟁은 아무리 힘이 있어도 안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밧세바를 취한 것은 절대 권력을 가진 주변나라의 왕은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 왕으로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후에 자신의 한계를 이렇게 인정했습니다.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131:1) 우리는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게 하는 욕심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선한 욕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욕심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전, 소망과 야망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도, 야망을 가진 사람도 열심히 경주를 합니다. 다만 그 방향이 다를 뿐입니다. 다윗이 해야 할 일은 왕으로써 백성들을 편안히 하고 백성들이 억울함이 없도록 지켜야 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담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나무 왕처럼(9:7-15) 백성을 괴롭게 하는 일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주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자기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이를 괴롭게 하고 결국 자신도 불행한 악순환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성경은 이웃을 위한 선한 사업에 힘쓰라고 말합니다.(딤전6:17-18) 그것이 주의 일이요, 굳이 표현하자면 선한 욕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