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떠나지 말라

2019.08.25 13:29

chihyun 조회 수:39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

예레미야 2:10-13

 

1.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싸우시겠다고 하십니다.(9)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른 나라를 보라 하시면서 깃딤과 게달을 예로 들었습니다. 깃딤섬(구브로)은 서쪽나라의 대표입니다. 게달은 아랍부족을 의미하며 동쪽나라의 대표입니다. 이스라엘이 잘 알고 있는 지역이요 접촉이 많은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웃나라들은 비록 우상을 섬기지만 자기들의 신을 바꾸지 않는 신실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하나님의 백성은 너무 쉽게 하나님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다”(11)는 것입니다. 그것은 배은망덕입니다. 이스라엘의 죄, 아니 인간의 보편적인 죄는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치 아니하는 죄입니다. 이스라엘은 은혜 받았을 땐 잠시 기뻐하고, 어려움을 만나면 끝도 없이 원망의 소리를 높였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는 치료를 받고도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한 명 외엔 말입니다.(17:18) 그는 예수님 앞에 와서 감사를 드렸는데, 성경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기록했습니다. 감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열의 한 명일 뿐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열심이 욕구에만 집중되어 있고, 감사에 있지 아니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의 본성을 감사치 않는 것’(1:21)이라 일갈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울은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7)고 말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넘치는 감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감사치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품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분노를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노의 시작은 내버려둠’(1:28)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은 적극적인 심판을 초래합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그 심판이 얼마나 가혹한지, 그것을 지켜보는 하늘이 놀라며 떨고 있어야했습니다.(12)

 

2.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입니다.

가나안 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나 이집트와는 달리 물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우물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땅을 깊이 판다고 해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우물 때문에 부족마다 전쟁이 자주 일어났습니다.(26:20) 그런 치열한 전쟁터에서도 이삭은 안정적으로 우물을 확보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26:24)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땅을 통과할 때도 물이 늘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이 있는 땅으로 인도하시기도 하셨고(15:27), 물이 없는 곳에서는 바위를 쪼개어 그곳에 물이 흘러나오게 하심으로 그들이 물을 얻었습니다.(20:11)

 

인생의 갈증은 육체의 갈증만이 아닙니다. 수없는 인생의 갈증을 채우는 물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샘물로 비유된 것입니다.(55:1;7:37;22:1) 이스라엘의 메마른 땅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는 샘물이 흘러나오듯이 항상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물이 육체의 목마름을 해소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신선하여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부족함이 없도록 해줍니다.(23:1)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은혜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도 흘러나오고 내일도 흘러나옵니다. 언제나입니다. 오히려 오늘 더 큰 은혜를 주시며(4:6)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1:16)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1:17)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8)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목마를 때 샘물로 가듯이, 목마른 자들은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때 가지고 갈 그릇이 믿음입니다. 예수께로 가면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 말입니다. 그러면 마른 땅에서 샘물이 터지듯이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새로 물웅덩이를 팠지만 그것은 터진 웅덩이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은 산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와 같습니다. 특징은 깨끗함과 무한함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웅덩이 곧 저수지에 보관된 물은 더러움과 제한된 양입니다. 누가 산을 돌고 돌아 정수된 깨끗하고 향긋한 물을 버리고, 오래되고 진흙이 섞인 불결한 물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그나마 터진 웅덩이라 물이 제대로 보관되지도 않는 엉터리 웅덩이입니다.

우리가 만든 작품이 하나님이 만든 것과 같겠습니까? 우리가 판 웅덩이에 저장된 물이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생수와 같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이 만든 종교 ,철학, 문화, 예술, 과학에도 적용됩니다. 이것들은 결코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하는 저수지 물에 불과합니다. 영혼의 갈망은 평안, , 감사, 만족을 요구하는데, 이것들은 하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생수로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이 큰 집이나, 맛있는 음식, 멋진 자동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적인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그것은 터진 웅덩이를 파서 더러운 물을 마시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웅덩이를 판 행위 자체가 악한 일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지역이라 비가 오면 물을 받아놓아야 할 웅덩이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웅덩이를 팠습니다. 그리고 물을 많이 받아 놓게 되었습니다.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악한 행위인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물웅덩이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물웅덩이를 채우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물이 가득 찬 저수지를 보고 교만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