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회와 겸손

2019.08.18 12:53

chihyun 조회 수:39

통회와 겸손

이사야 57:15-21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통회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주장은 고대의 에피쿠로스 학파(17:18)나 계몽주의 이후 출현한 이신론에서 나타납니다. 성경도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지적합니다.(22:14) 그러나 이사야가 말하는 하나님은 비록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계시지만 인간과 함께 있으려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인간과 다투기도 하시며 노하기도 하시고(16) 치시기도 하시고(17) 고치시고 위로하시기도 하시며(18) 소생시키시고(15) 평강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입니다.(19) 이처럼 인간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좋아하는 인생은 겸손한 사람, 통회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1.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인생은 한계를 가진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영원하시나 인생은 흙으로 지어져 육체를 가졌기에 사멸적 존재이며(3:19),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나 인간은 시간에 매여 있기에 누구나 일정한 시간 내에서만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은 공간의 제약이 없어 어느 곳이나 계시지만(편재) 인간은 공간의 한계를 가졌기에 동시에 두 곳에 머물 수 없습니다. 한 예를 든다면 사랑하는 이가 나와 떨어진 곳에서 고통을 당한다 해도 마음뿐이지 도울 수 없습니다. 항해할 때 바다 앞에, 산에 오를 때 산 앞에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극지를 탐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매사에 혈기와 자만을 경계합니다.

 

2)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 의존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 아내를 만들어 줍니다. 둘은 한 몸을 이룹니다.(2:24) 한 몸은 떼어낼 수 없으니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가르쳐줍니다. 인간사가 마찬가지입니다. 투수가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수비수들이 잘 협력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나라도 회사도 유능한 한 사람으로 경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겸손해야 생존할 수 있고 나아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몸공동체’(고전12:12-27)입니다. 공동체의 건강은 서로 돕고 사랑하는 지체에 달렸습니다. 서로 돕고 사랑하려면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2:3)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 인생은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는 우리보다 강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의 뿌리는 사탄이라는 영적존재입니다.(8:44;4:27;요일3:8) 그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탐욕, 본능, 야수성을 드러내려고 유혹합니다. 경쟁의 유혹에 카인이 동생을 해치고, 재물의 유혹에 삭개오는 백성을 착취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권력의 유혹에 사울은 충성스런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여자에게 유혹을 받아 부하의 아내를 빼앗는 파렴치범이 됩니다. 성경의 유명인물에게서 보듯 누구도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성자 바울은 유혹을 이길 수 없는 자신을 보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7:24)하며 탄식합니다. 스스로 죄와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래서 겸손히 그리스도 앞에 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2. 통회와 겸손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사람이 통회하는 이유는 겸손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한계를 모르고 우쭐대며 사는 것은(4:16) 겸손을 벗어난 것이요, 형제를 배척하면 홀로 잘 살 수 있다 한 것도 겸손을 팽개친 것이요(요일3:12), 죄가 없다고 하거나 죄를 감추려 한 것도(요일1:10) 겸손대신 교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막론하고 회개의 대열에 서야 합니다. 회개보다 더 강력한 용어가 통회입니다. 단순히 머리나 입술의 회개가 아니라, 가슴을 치는 애통이 있는 회개가 통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던 것을 통회하는 것이 가장 큰 통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었으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또 매일 매순간 통회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것을 큰 통회라 한다면 나중의 것은 작은 통회라 말할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가 지적한 이스라엘의 죄는 탐심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간 것입니다.(17) 탐심은 부당한 방법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인데 도적질, 속임수, 중상모략, 일중독 등 여러 가지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이사야가 열거한 그들의 탐심은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돕지는 않고 오히려 압제하고 훔치고 빼앗은 것입니다. 부당한 소송으로 괴롭히고 부패한 재판관을 매수하여 착취하며, 또 사람을 억울하게 쫒아낸 것입니다.(1:15-23; 3:5,14-15; 5:8,23)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간 것이란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을 버리고, 오직 탐욕을 채우는 데만 열중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율법을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율법을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적용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은 길이요 패역한 길이었습니다.(65:2) 구약의 사울이나 신약의 가룟 유다는 자기 생각을 신앙의 길이라 여긴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통회를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자기의 길과 하나님의 길의 대립에 서 있습니다. 때때로 우린 하나님의 길을 벗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통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통회를 배우지 못하면 영원한 심판대 앞에서 효력이 없는 통회의 눈물을 쏟게 될 것입니다.(13:42,50)

 

3. 통회하고 겸손한 자에겐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습니다. 악인의 내면은 늘 더러운 것이 솟구쳐 올라오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다고 했습니다.((20) 유다서는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라 했습니다.(1:13) 악인들은 항상 불안, 두려움, 걱정, 괴로움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라와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반면에 통회하고 겸손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15)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우리가 멀리 있던 가까이 있던 그 어느 곳에 있어도 문제없습니다.(19) 물속이나 불 속과 같은 환난 가운데 있어도, 전쟁의 위협 가운데 있어도, 가난과 기근 가운데 있어도, 질병 가운데 있어도 그 하나님이 평강을 물같이(66:12) 부어주십니다. 그 평강은 마음의 평강만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고치시는 평강, 치유하시는 평강을 말했습니다.(19) 하나님이 물과 불의 위협에서 건지시기에 평강이고, 질병에서 치료하시기에 평강이고, 기근 가운데서도 먹이시기에 평강이고, 전쟁의 나팔소리가 울리는 가운데도 막아주시기에 평강입니다. 누구에게 입니까?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겸손히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