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산에 오르자!

2019.06.23 13:11

chihyun 조회 수:42

여호와 산에 오르자!

이사야 2:1-4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온 누리에 평화를 이루실 미래를 내다보며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라고 요청합니다.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설 것입니다.

산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거나 자신들의 신을 예배하던 장소입니다. 헬라인들은 위대한 신의 거처가 올림푸스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산에 제우스를 비롯한 12신이 거처합니다. 그런데 그리이스의 올림푸스산은 2,919의 큰 산이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은 750이니 작고도 낮은 산입니다. 이스라엘 안에도 이름 있는 산인 에발산(940), 그리심산(881), 북쪽의 헐몬산(2,814) 등과 산세를 비교하면 시온산은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성전은 다른 산에 있는 이방신전에 비해 초라해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오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이 산중의 산, 곧 산들의 맏형으로 대접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시온산이 더 높아지거나 웅장하게 변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존귀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존귀한 산이지만, 후에는 만백성이 우러러 볼 산입니다. 성경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28:1)할 때의 산이 시온산입니다.

인간들은 크고 높은 것을 좋아하고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생각을 보기 좋게 뒤집으십니다. 애굽, 바벨론, 로마에 비해 이스라엘은 보잘것없는 나라요 민족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예루살렘에 비해 갈릴리는 낮고 비천한 땅이지만 예수의 복음은 그곳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크고 높은 곳만 좋아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1:23)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가장 높이셨습니다.(5:31)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산에 오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산을 쳐다볼 일이 아닙니다. 시온산이 물리적으론 비록 낮은 산이고 주변의 산들에 비해 초라하다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그 성전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물쭈물할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라는 말은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이방신들을 모신 산에 비해 위용이 떨어지는 시온산을 보고 머뭇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말입니다. 방향이 정해졌으면 좌우를 쳐다볼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는 이유는 좌우를 쳐다보고 치우치기 때문입니다. 좌우를 쳐다보면 우리의 안목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습니다.(요일2:16) 그것에 주목하다보면 유혹을 받아 갈 길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길을 갈 때 좌우로 갈지()자 행보를 하지 말고 똑바로 가야 합니다. 웅장하다 하여 그 산에 하나님이 있다거나 다른 신이 하나님 보다 더 큰 신이라거나 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산에 믿음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날로 하면 여호와의 산은 교회입니다. 구약시대는 특정한 물리적인 장소인 시온산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교회가 우리가 오를 여호와의 산입니다. 다행히 이 교회는 지구 상 어떤 특정한 장소 한 곳에 있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성도들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엔 두세 사람이 있어도 그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8:20) 찬송 가사처럼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438)입니다. 오늘날 많은 종교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큰 산 위에 세워진 듯 보입니다. 그러나 기독교회만이 모든 산꼭대기 위에 굳게 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있는 곳이 그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오르는 교회는 여호와의 산이요 그리스도의 집입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행할 길을 배우게 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의 산 위에 있는 성전에서 선포되었습니다. 백성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듣습니다. 그곳에서 죄악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다시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하나님의 축복이 회복됩니다. 예수님은 산상 수훈을 전하실 때 산 위에서 하셨습니다. 수천의 백성들이 기쁨으로 그 산에 올랐습니다. 그곳에서 복된 천국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 이후 말씀은 교회에서 선포됩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교회에서 구주 예수의 생애와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 그분이 하신 일과 교훈하신 말씀, 그 분이 약속하시는 하나님나라와 영원한 생명에 대해 듣고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우리는 그 말씀에 아멘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풍조와 다르게 살아갑니다.(12:2) 또한 살아온 길의 잘못을 돌이켜 통회하고 다시 새롭게 된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 섬김의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가 행할 길은 전쟁의 길이 아니라 평화의 길입니다.

사람들의 본성에 전쟁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선 순종하고 사람에 대해선 평화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의 참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들의 자녀 카인과 아벨은 서로 불화하고 전쟁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있는 칼과 창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웃시야왕 시대는 전쟁이 많았고 무기도 많이 개발되었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웃시야는 교만하게 되었습니다.(대하26:6-16) 그러나 이사야는 그 시대와 웃시야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화의 왕이신 메시야가 다스릴 나라를 소개하면서, 평화가 하나님의 뜻임을 강력히 선포했습니다.

야곱은 복을 위해 형과 전쟁하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을 알고 화해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로 인해 사지로 떨어졌지만 용서의 사람이 됩니다. 바울도 율법으로 무장한 전쟁의 사람이었고, 삭개오는 탐욕을 위해 백성을 착취한 전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알고선 섬김의 사람, 인내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은 평화의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여기는 백성이 많아질수록 전쟁은 줄어들고 평화는 확대될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내 주변 형제자매관계부터 더 큰 세계로 평화의 물결이 넘쳐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