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예배할까?

2019.04.28 13:18

chihyun 조회 수:71

어떻게 예배할까?

시편 100:1-5

 

오늘의 본문은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면서 그의 앞으로 나아갈지어다.”(2)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예배요,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배자의 발걸음이 경쾌해 보이는 이유는 그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배는 불안, 초초, 긴장이 지배하는 예배였다면, 신약의 예배는 축제 그 자체입니다. 구약의 예배는 용서를 청원하는 자로서 그 결과를 초초하게 기다리는 죄인의 모습이라면, 신약의 예배는 잔치에 참여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구약의 예배는 탕자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면서 아버지의 진노를 감수하겠다는 비장한 모습을 비추어준다면, 신약의 예배는 아버지의 환대 속에 다시 사랑받는 아들로의 지위가 회복된 모습을 비추어줍니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으로 말미암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비록 구약의 말씀이지만 예배자의 마음속에 충만한 기쁨이 넘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자의 마음의 자세를 살펴봅시다.


1. 찬양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1절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하고 명령합니다. 2절은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라고 가르칩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기쁨의 찬양을 부르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제적 사랑에 기인합니다. 곧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은혜를 베푸셨기에(요일4:10) 즐거운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표적 찬양시인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15:1-21)은 애굽에서 구원받았기에, 드보라와 바락의 찬양(5:1-31)은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서 구원받았기에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고통 중에 탄식을 할 뿐 찬양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신 도움으로 고통의 근원이 제거되니 기쁨과 환희로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의 구덩이에서 울부짖을 때 하나님의 건지심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만이 마땅히 찬양을 받으실 분으로 여겼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찬양의 대 전제를 배웁니다. 즉 찬양은 인간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의 노래는 단순히 곡조를 따라 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으로 소리쳐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번 은혜를 맛 본 백성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며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찬양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부르는 고백이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찬양을 했고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찬양을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던져질 때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확신했을 뿐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찬양했습니다.(3:17-18) 그것은 무모한 행위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전능하신 도우심을 경험한 이들의 노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찬양하는 이유는 그가 도우셨으며 또 도우실 것이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눈물 중에도 찬양을 부릅니다. 그런 찬양은 기쁨 중에 부르는 찬양 위에 있는 찬양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웃음 가운데 부르는 찬양은 아무 아름다움이 없어도 오히려 눈물 속에서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리라”(13:15)라고 노래한 것처럼 말입니다.

 

2.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11:6) 어떤 믿음일까요? 본문 3절은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둘째,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며, 셋째, 그분은 우리를 기르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는 자는 우상을 숭배하지 아니하며, 그 분만을 경외하고 그 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절대 순종합니다.(10:27) 더 중요한 것은 그 분은 포악한 주인이 아니라 선한 목자로(10:14) 우리를 기르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은혜, 돌봄, 구원으로 나타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소유 된 백성을 절대로 버리시거나(14:18) 빼앗기시는 분이 아닙니다.(10:29)

예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칭찬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8:10;9:22,29)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셔도 말씀만으로도 내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8:8) 한 백부장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고,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9:21) 생각했던 혈루병 여인의 믿음과 주님은 고치실 수 있다고”(9:28) 굳게 믿었던 맹인들의 믿음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믿음 없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예복 없이 왕 앞에 나아가는 것과 같이 불충한 일이요, 공경 없이 부모 앞에 서는 것과 같이 불효한 것과 같습니다.

 

3.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4절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이 중요시하는 것은 마음의 자세입니다. 마음의 자세 가운데 최고는 감사입니다. 왜 감사해야 할까요? 그것은 위에서 말한 믿음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분들을 통해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기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 분이 기르시는 양”(3)으로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양은 반드시 목자를 필요로 합니다. 목자 없이 양은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양은 나약하기 그지없어서 혼자서는 풀도 물도 찾아먹지 못합니다. 개나 소도 제 집은 찾아온다고 하는데 양은 제 집도 혼자서는 찾아오지 못한다고 하니 얼마나 바보입니까? 늑대나 이리를 만나면 맴맴 울면서 이리저리 도망이나 다닐 뿐 물거나 발로 차서 대항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양에겐 세상 모든 것이 위험투성이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돌보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범사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고전15:10)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서있는 것에는 하나님의 용서도 한 몫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용서하셨으며 그 용서를 확증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감사로 예배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5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