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있습니다

2019.04.14 12:46

chihyun 조회 수:66

길은 있습니다

시편 77:14-20

 

 

인생의 길은 종종 끊어져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의 길을 거쳐 하나님이 약속한 땅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만에 홍해바다를 만났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바닷가 앞에 장막을 치고 다음 수순을 생각해 보고 있었습니다.(14:2) 다리를 놓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던지, 또는 배를 수소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였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가다듬은 바로가 마음을 고쳐먹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잡으러 군대를 총동원해서 추격해왔습니다. 그러니 바로 홍해를 건너가지 못하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길은 끊어져 있는 상황이니 그들은 광야에 갇힌 형국이었습니다.(14:3)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낙망하지 말라는 것이 신앙의 교훈입니다.(42:5) 물론 이스라엘 백성은 낙망해서 주저앉았습니다. 정신은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후회의 감정과 원망의 감정이 극렬하게 교차합니다. 즉 그들은 괜히 나왔다가 오히려 죽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아가 모세와 아론을 원망스레 쳐다봅니다.(14:11-12) 왜 이리 어설픈 일을 시작해서 죽음으로 몰아넣었느냐는 것입니다. 뒤에선 적들이 추격해 오고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큰 바다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정녕 길은 없는 것입니까? 이대로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2. 길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은 그들이 가려고 하는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곳에 가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뭘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계획이나 최소한의 정보가 있어서 그곳으로 가겠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에 의거해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주저할 때 하나님은 기사와 이적으로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능력이 바로의 능력을 능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를 따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길 결정했습니다. 결정했다면 그 다음은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삶의 축복도 고통도 기쁨도 슬픔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성경은 길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끊겨진 길을 이어진 길로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위탁을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 나머지 안정을 택할 노령의 나이 75세에 고향을 버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서 기대와는 달리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길을 떠나온 것에 대한 후회나 원망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피신을 갈 때 약간의 꾀를 사용하지만(12:11-13)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나 원망은 없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지요? 모세를 따라 나온 이스라엘의 무리나 아브라함이나 길을 떠나다 역경을 만난 것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역경을 대하는 태도는 전연 다릅니다. 그것이 신앙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닫힌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 신앙 말입니다.(7:7) 베드로나 바울은 끊겨진 길이라 할 수 있는 감옥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16:25) 그것이 결국은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막힌 길을 뚫을 처방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인생의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16:9)

 

3. 길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주의 발자취는 알 수 없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길은 준비되어 있었고 그 길에는 주의 발걸음의 자국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해변에서 발자국이 끊겨있기 때문에 더 이상 길이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길은 바다 속으로 나 있었습니다. 단지 인간의 눈에 감추어져 있고 인간의 능력 너머에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략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결국 실패가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전략을 아무리 잘 세워도 실패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략에는 어리석음이 없고 실패가 없습니다.

바울의 예를 들어봅시다.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추어 바울의 눈이 멉니다.(9:8) 그 다음엔 아나니아가 준비되어 나타나 건강이 회복되고 신앙의 길에 굳게 섭니다. 다음에 바울의 과거 전력 때문에 복음전도자의 길이 열리지 않자 바나바가 나타나 해결됩니다.(11:25) 하나님의 부르심에 힘입어 마게도냐 첫 성 빌립보로 갔는데 막막했습니다. 그냥 강가에 걸었는데 여자들이 있고 그녀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더니 자주장사 루디아의 마음이 열려 그녀의 집이 유럽선교의 교두보가 됩니다.(16:14-15) 모든 것이 바울이 준비한 것이 아니고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준비하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주께서 길을 이미 만들고 숨겨놓으셨을 뿐입니다. 때가 되니 안개가 걷히듯 길이 드러나게 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13년 머물던 뉴욕을 떠났습니다. LA로 갔는데 그냥 갔습니다. 그런데 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리시다 지역의 미국교회를 출석하자마자 그곳 장로님들이 여기서 목회를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가 준비한 곳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는지 한국에서 오라고 합니다.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드러나기 전까지 모두 비밀에 부쳐져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던 길입니다. 짐작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냥 열린 것입니다. 그러니 길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그냥 믿어야 합니다. 굳이 말하면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요 주님이 열어주시는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길이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홍해를 건너려면 홍해로 걸어 들어가라 하는 말과 같이 이해하기 힘든 말입니다.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는 길을 우리가 만들어야지 하고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겐 예수께로 가야만 길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길이든 중심적인 길이 있습니다. 모두와 연결된 길 말이지요. 결국 인생의 다양한 길은 예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예수님이 곧 길이심을 믿지 않습니까? 그 말은 예수님을 믿고 그 분과 동행하면 저절로 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14:14;3:8) 다시 말하면 양들에게는 목자가 길이 아닙니까? 목자가 가는 곳을 따라가야 꼴을 얻고 안전한 길이듯, 예수님을 따라가야 생명을 얻습니다.

믿으십시오! 모세는 바다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고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갈랐습니다. 그리고 마른 땅을 드러내 놓았습니다. 그의 백성은 바다를 마른 땅이 되리라 믿고 걸어 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사망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