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판결

2018.11.04 12:48

chihyun 조회 수:79

세 가지 판결

(사무엘하 19:16-39)

 

다윗 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복귀했습니다. 그가 첫 번째 한 일은 여러 사람에 대한 판결이었습니다. 다윗의 판결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행해질 영원한 심판(24:25;9:27)의 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회개한 시므이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시므이는 사울 왕가의 일원으로 쫓겨 도망치는 다윗을 저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과의 최후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돌아오는 길에 제일 먼저 얼굴을 드러낸 사람이 바로 시므이였습니다. 얼마 전의 시므이와 다르게 그는 다윗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범죄 한 줄 아옵기에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20)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다윗의 장수 아비새는 그가 왕을 저주하였으니 죽어야 마땅합니다”(21)라고 강력하게 진언했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처분이 당연하다고 여길 때에 다윗은 이례적으로 시므이를 용서합니다.

다윗의 용서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닮았습니다. 다윗의 용서가 파격이듯 하나님의 용서 또한 파격중의 파격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알려고도 아니했고 믿지도 아니했으며 그 분의 말씀과 교훈을 경멸하고(1:30) 육신의 욕심대로 살았던 죄인 중의 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어 마땅한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십니다.(3:23-24) 다윗 앞에 무릎을 꿇었던 시므이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였듯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중요한 것은 회개의 마음입니다.(51:17) 복음의 첫발 곧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걸음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회개를 강조했고 예수님도 회개를 그의 복음 전파의 첫 일성으로 삼았습니다.(1:15) 사도들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2:38) 하나님이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145:8)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2. 므비보셋은 억울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망명길에 나와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26) 사실 므비보셋은 다윗을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는 종들의 우두머리인 시바에게 모든 준비를 갖추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바가 잘못된 머리를 썼습니다.

 

시바는 므비보셋에게는 속임수를 쓰고 다윗에게는 오히려 므비보셋을 모함했습니다. 대략 교활한 시바는 므비보셋에게는 다윗의 시대는 끝이 났으니 다윗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하였을 것이고 다윗에게는 이제야 내 아비의 나라를 찾을 수 있겠구나하고 기뻐하였다고 모함하였습니다.(삼하16:1-3)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저는 장애인(삼하9:13)이었기 때문에 시바가 돕지 아니하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엄중한 질문을 받고 사실 관계를 소상히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왕의 처분대로 하소서”(27)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의 겉모습을 본 다윗은 그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쫓겨 간 날부터 그의 발을 맵시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24)하였습니다. 다윗 왕은 공의와 지혜를 가진 왕이었기 때문에 그의 진실한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억울함을 인정해주었습니다.

다윗의 판결은 하나님이 장차 우리에게 할 판결을 닮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다윗도 한 때 이런 억울함을 호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69:4) 하나님은 그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23:11;애가3:36) 그래서 율법에도 억울한 백성을 없게 하려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이 도피성제도(19:10)와 재판에서 반드시 두 세 증인으로(19:15)판결하게 한 것입니다.


3. 바르실래는 칭찬과 보상을 받았습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는 큰 부자였습니다.(32) 그는 다윗이 쫓겨 온 이후 요단강 동편 땅 마하나임에서 머물 때에 다윗 왕의 살림을 책임져 주었습니다. 그 시간이 짧아서 다행이었지 전쟁이 장기전의 양상을 띠었다면 그는 재산을 다 잃어버릴 수도, 여차 잘못해서 다윗이 패하면 목숨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다윗은 바르실래의 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르실래에게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33)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나이가 80세라 욕심이 없었습니다. 따라가면 왕에게 누를 끼칠 것이라 하여 겸손하게 거절합니다. 그래도 다윗이 상을 주려고 고집을 피우자 그는 자신의 아들 김함을 부탁합니다. 다윗은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38) 하며 그에게 깊은 포옹을 하고 그의 아들을 데리고 떠납니다. 바르실래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나중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도 바르실래의 아들들을 소중히 여기라고 부탁합니다.(왕상2:7)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상급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위의 두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적극적인 사랑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잘못한 사람은 용서해주시고 억울한 사람은 그 억울함을 풀어주시지만 바르실래와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여 상급을 주는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주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25:21)